고대부터 지속적으로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는 이상적 국가를 구성하고 철학자 자신이 거기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반적으로 몇 가지 특징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법에 의한 통치다. 법이 공공을 위해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결국 철학자들이 정치를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모어 역시 이런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어는 라파엘에게 플라톤의 국가 5권에 나오는 말을 가지고 질문을 던진다. “행복한 국가는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또는 왕이 철학을 공부하게 될 때에 비로소 실현된다.”
책 속의 모어가 보기에는 철학은 상당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했다. 라파엘이 정치의 참여를 거부한 것은 군주들이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고 무엇이 좋은 정치인지 생각하기 보다는 그전에 전쟁을 통한 영토확장에 더 열을 올리고 있음을 보며 그 아래서 정치에 대한 타당한 조언을 하지 못하고 군주의 눈치나 살피며 그가 원할 것 같은 대답만을 양산해 내는 것이 철학자가 정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차라리 자유롭게 지혜를 바라보고 경험을 쌓아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고 단언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에서 철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책 속의 모어는 생각했다. 책 속의 모어는 여전히 정치와 도덕을 결합을 통해 타락한 인간의 행동을 최소한이라도 움직여서 인간 삶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지식인인 철학자는 일반적인 대중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해야 했다.
이런 생각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나오는 동굴의 비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진실한 태양을 본 사람이 광명의 세계에 계속 머무르지 않고 다시금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 그들을 설득하는 모습은 철학자의 공적 의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모어가 국가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국가에서 나온 문제 의식을 책 속의 모어가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라파엘은 여기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파엘의 눈에는 그것은 타락으로 들어서는 길이다. 정치의 참여는 플라톤이 말했듯이 이득이 별로 없는 일이다. 플라톤이 철학자를 설득하는 방식이 자신보다 더 못한 사람에 의해서 통치를 받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인가를 강조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이득은 없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 만큼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참여는 결과적으로 타락으로 이끌릴 수 있는 일이었다.
라파엘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1부 후반부에 나왔던 이런 문제의 지적이었다. 지식인들이라는 관료들이 겨우 하는 것이 군주에게 비위를 맞추는 일이었다. 그것은 타락이다. 타락한 철학자의 삶은 이미 행복한 삶이 아니다. 라파엘은 그것에 대해서 철저한 거부를 통해서 자신의 삶이 더 행복한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철학자가 정치에서 해야하는 일은 사람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일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라파엘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정치에서 철학이 해야 하는 일은 제도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성을 착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전히 기독교의 영향 속에 있는 저자 모어의 입장에서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낙원에서 쫓겨 난 존재다. 제도를 통해서 모두에게 평등성을 보장하고 죄를 짓는 것이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범죄를 예방하는 것으로 우리는 최소한의 유토피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저자 모어는 라파엘의 입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정의는 공평함과 바람직한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회 구조를 전반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라파엘은 사회의 문제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지적한다. 하나는 게으름을 조장하는 사회의 구조다. 귀족과 그 가솔은 전쟁을 핑계로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인클로져 운동이다. 농민들이 더 이상 일할 공간을 잃어버리고 도시로 내몰렸다. 사치를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런 귀족에게 부의 집중을 만들어 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회는 좋아질 수 없으며 그리고 철학자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는 조건에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결국 타락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 속의 모어는 그럼에도 사람을 도덕적으로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지만 라파엘은 도덕적인 것은 해결의 실마리가 아니며 오히려 지식인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드는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일 뿐이라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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