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네요. 페친으로 있으신 분의 글을 제가 좀 제 스타일대로 고치고 제 생각을 첨부해서 적었습니다. 그래서 글이 좀 두서 없습니다. 그 부분은 이해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피켓팅을 한 당원에 대한 제소문제로만 이야기가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소를 하는 것이 과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하기에 앞서 결국 피켓팅의 내용이 왜 논란이 되어 다뤄졌는지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솔직한 말로 당의 공식 입장을 그냥 피켓팅하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테니까 말입니다. 제소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결국 본질은 내용의 문제입니다. 물론 지금 쓰려는 글은 그 분을 향한 글이 아닙니다.(단, 절차의 문제를 빙자하여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그 분의 태도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느낍니다.)
여성혐오는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여성혐오는 남성만의 점유물이 아닙니다. 남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여성혐오는 재생산 됩니다. 따라서 남성뿐 아니라 여성조차도 자신의 삶 속에 일정하게 여성혐오라는 체계를 내재화하는 편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더 편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가해자'라는 구호가 비단 남자에게만 돌아오는 말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동시에 우리당에서도) 여성혐오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당의 많은 당원들은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다른 당원과 만나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여성혐오란 것이 단순히 폭력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어떤 학자들의 말을 빌어서 설명하지 않더라도 여성혐오는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폭력만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성혐오’는 사회의 구조적 편견과 그 편견의 일상화, 의식으로의 내면화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성혐오는 개인의 자아를 형성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설정하게 만들며, 사회의 규칙들에 영향을 미치는 성별 구조라는 일상성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부장제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낸 의식적, 무의식적인 구조의 틀에 뒷받침됩니다. 남성혐오가 그것의 배경이 되는 이데올리기적 뒷받침이 없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와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여성혐오의 대립항으로서 남성혐오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묻지마 살인인가, 여성혐오범죄인가를 넘어서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인가 아니면 여성혐오 범죄인가라는 대립적 논쟁은 별 의미도 없고, 오히려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를 어떤 개인이, 혹은 어떤 질병이 일으켰는가가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갈등을 개인의 차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문제로 이해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사라집니다.
설사 가해자가 악마였던, 아니면 묻지마 살인이었던 간에 왜 개인, 혹은 특정한 집단의 분노와 범죄가 다른 특정한 개인, 혹은 집단에게 향해지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가 여성혐오 범죄라는 것이 명확해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고, 그것이 묻지마 살인이든 계획적인 살인이든 사회를 통찰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식의 논의를 만들지 못하고 “단순하게 남자들을 모두 가해자로 만든다.”, “남녀가 대립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젠더의 문제를 타자화하는 형태의 발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의 대응은 윤리적 강박을 만들던가 논의를 사방팔방 퍼트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여성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