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Ousia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존재란 무엇인가 하고 물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Ousia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실체로 번역되는 Ousia는 einai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이란 의미에서 Ousia는 어떤 의미일까? 우선 『파르메니데스』편에서 이데아론의 비판을 생각해보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보자.
파르메니데스는 젊은 소크라테스에게 “물, 불, 흙과 같은 복합체에 대한 이데아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여러 성질이 합쳐져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이데아론이 설명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에 대해서 청년 소크라테스는 정확하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모든 것은 합쳐져서 존재한다!’(Synholon)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시작점이다. 플라톤은 실체를 현실과는 떨어진 추상물로 바라본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을 하나의 실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합쳐져서 존재하는 것은 그냥 여러 부분이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능을 하도록 하나로 모여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생물체와 인공물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Ousia는 기능에 맞춰서 형상과 질료로 구성된다. 영혼에 맞춰서 찍어내면 각 기능에 맞춰져 있는 형태를 이룬다. 그리고 모든 개별자들이 각각 떨어져 있듯이 Ousia는 각각 떨어져 있는 성질을 가진다.(hektaston) 즉 신체의 윤곽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Ousia의 성질 중 하나는 ‘바로 이것’(tode ti)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주가 하나의 전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질서 잡힌 것이 완전히 하나면서 구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다. 그 한가운데 땅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하나로 집을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성질로는 유기적으로 하나로 연결된 것(atomon)이란 의미다. 자를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실체라 부르는 것은 쪼갤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의 핵심에는 harmonia라 불리는 “다 속의 일자성”의 개념을 중시한데 있다. 여럿이 하나의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실체, 즉 Ousia다. 생명체도 인공물도 그리고 그 부분들도 모두 Ousia다. 그러면 흙과 돌과 같은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실체적 성격이 부족한 것들이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물들을 덜 실체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복합물이 실재하는 것이다. 오직 실체만이 존재하고 다른 것들은 실체에 붙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Ousia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것을 살펴보면서 그 성격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라틴어로 번역을 하자면 Ousia를 두 가지로 구분해서 번역을 한다. 하나는 substantia로 번역되는 주어로 밖에 올 수 없는 실체가 있고 술어로 나올 수도 있는 실체로 esentia가 있다. 그 중에서 substantia는 모든 성질을 모두 빼내고 나면 남는 것이다. 이것들은 성질들을 모두 쌓아올려질 바로 그 바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는 바로 실체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여러 가지로 말해지는 것(Pollachos logotai)이다. 그것을 분류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우연적 의미 : 주어와 술어가 우연적으로 연결되는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령 철수는 하얗다.와 같은 것이 이 경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2) 본질적 의미 : 이것은 범주의 수만큼 있는 것이다. 양과 질, 관계 등과 같은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3) 가능태와 현실태의 의미 : 현실태란 지금 이루어진 것이며, 가능태란 능력, 권력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 두 양상은 모두 중첩저으로 존재한다.
4) 진리의 의미 : 명제가 진리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목적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는 여러 것들이 기능을 하나로 합쳐저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주도 개별 개체들이 여럿이 모이면 하나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우주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
제 1 형상
이성
인간
동물
유기물
무기물
원소
제 1 대립자
제 1 질료
여기서 제 1 형상은 목적, 제 1 운동인이다. 이건 형상과 운동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질료의 상태에 있는 것은 파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질료는 언제나 인식을 벗어난 상태로 있는 것으로 그것이 인식되면 그것은 이미 형상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런 형상이 없이 뭔지도 모르는 것이 바로 제 1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료를 플라톤의 아페이론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는 아페이론보다 질적 측면이 더 높다고 생각해야 한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질료-형상 이론이 된다.
그렇다면 구조를 가능태와 현실태의 구분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제 1 질료는 완전한 가능태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1 형상은 완전한 현실태가 된다. 질료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완전한 현실태이기 때문에 제 1 목적이 된다. 운동은 가능태의 현실태화이고 결국 모든 운동의 목적은 제 1 형상이다. 그리고 이 제 1 형상은 순수한 현실태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 가능태일 질료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적론이 결정론이란 것은 아니다. 세상은 제 1 형상이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제 1 형상은 그 자체로 운동하는 것이 아니어서 다가오는 노력을 하게만 할 뿐 오는 경로를 모두 지정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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