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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

홉스의 공포

홉스의 공포

 


홉스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에 하나는 국가라는 정치적 공간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판단이다. 정치적 공간의 구성은 정치의 영역이 경험적이고 역사적이란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일이었다. 인간이 인간의 손으로 인간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동시에 중세의 교회적 우위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홉스의 철학에서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핵심적 요소는 바로 공포다.

  정치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연상태에 위치하고 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단순한 정념에서 비롯된다. 자연상태는 모두가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된 공포는 모든 사람을 전쟁상태로 끌어들인다. 이 단순한 사실에는 한 가지 전제된 가정이 있다. 우리가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이다. 사람은 특히나 살아남는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평등하다. 사람이 가진 힘의 차이는 평균적으로 비슷하다. 따라서 살아남는 노력의 정도와 운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혹은 생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처절하게 생존을 위해서 투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운이 우리의 삶을 유린하기 전까지 우리의 생존은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노력의 일환으로 인간은 power를 추구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정념이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power가 우리를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는다. 자연상태의 세계는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모두가 power를 추구하게 된 사태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연상태는 우리에게 무한정한 자유를 부여했지만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에 하나는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공포에 의해서 유발된 자연상태와 공포가 만들어낸 인간의 본성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공포는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한다. 그러나 이런 삶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다. 여기서 인간의 삶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동물의 삶이다.

이런 상태를 더 골치아프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 이성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합리적인 판단은 남을 억누르고 자신이 우위를 점할 것을 요구한다. 그나마 공포의 크기가 줄어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여기서 발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의 위협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우리에게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성은 동물의 삶을 더 철저하게 즐기고 유지할 것을 강요한다.

사람의 삶을 지옥과 같이 만들어 놓은 공포와 이성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태에 대한 극복의 단초가 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도저히 타인과 일정한 합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기가 옳다고 생각히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에 둔다. 옳은 자신이 죽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극의 본질적인 원인 중에 하나다. 인간의 이성은 이런 본질적 사태에서 벗어날 방향성을 찾는다. 그것은 옳은 것을 하나로 정해버리는 방법이었다. 유일하게 옳은 것은 결국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이 된다. 인간들이 각자가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하나의 절대적인 권위가 옳은 것을 정해버린다면 그것으로 뒷통수 맞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 필요가 줄어들게 된다. 공포가 만들어낸 세계의 위협에서 우리가 벗어날 희망은 유일한 강자를 만들어내어 그 유일함을 신봉하는 일이었다.

그 유일함을 만들어내는 것은 모든 자연상태의 인간들이 합의를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자유를 모두 포기할 수 있다는 합의, 즉 자신의 자유를 타인에게 양도하겠다는 단순한 합의만을 하면 된다내용을 일일이 규정할 필요도 없다. 양도한다는 사실만 동의하면 된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양도만 한다면 사람들은 주변의 타인에 의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부자유를 택했지만 그 대가로 인간들은 행복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확보한 것이다. 모든 개인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절대자이자 리바이어던과 같은 권위의 존재, 유일한 주권자가 등장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정치적 공간을 합의란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그 공간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추동력은 공포였다. 인간이 모든 사람들에게 죽을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공포가 인간의 본성을 생존에 대한 철저한 추구로 나타나게 했고 그 본성으로 공포는 오히려 증대되었다. 모두가 살아남으려 주변의 사람들을 의심하고 위협하며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어 그들의 행동마저 제약하려고 하는 순간 자연상태는 겉잡을 수 없이 파국으로 치달아간다. 이 파국을 끝내는 것은 역시나 공포다. 여기서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 도움을 준다. 최소한의 합의를 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한다. 최소한의 합의는 인간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방법으로 공포에서 벗어나려 한다. 정치적인 공간을 만들고 스스로 정치적 행위를 하는 존재로 전환시킴으로써 인간은 자유를 잃은 대신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공포란 정념이 인간을 동물적 삶을 살아가게 만들고,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치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만들어낸 것이다. 공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동하게 될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