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비르투
마키아벨리는 중세와의 결별을 선언함으로써 근대 정치철학의 길을 열었다. 중세와의 결별은 두 가지 지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중세 교회와의 결별이다. 중세 시기 정치의 영역을 종교의 영역 아래 위치한 하위분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부정한 것이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북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프랑스와 영국과 같은 국가들이 절대왕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만들어 감에 따라 교황의 영향력이 이탈리아 내부에서 감소하기 시작했던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 마키아벨리는 이런 생각을 구체화했다. 교회의 도덕률에서 벗어나 권력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정치의 독자적 영역을 재확보하는 일이었다.
정치행위의 독자성을 이야기하는 내용은 『군주론』 후반부에 지속적으로 나온다. 15장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과거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주장들이었다. 도덕적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정치적 역할을 할 때는 비열한 활동을 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과격함을 넘어서서 파격적이었다. 정치적인 것은 특수한 것으로 파악하고 그 안에서는 종종 악행이란 것을 행해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좋아할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악평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군주들에게는 썩 내켜할만한 주장이 아니었다.
다른 한가지 특징은 철학적 사유에 기반한 이상적 국가를 그려내는 기존의 정치학과 다르게 마키아벨리는 경험과 역사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과거 정치학과 결별한다. 성공은 과거의 성공한 역사를 따라 할 때 가능해진다. 끊임없이 변하는 가변성을 긍정하면서 그 가변성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 가변성 안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는 역사가 가장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이런 특징이 결합하여 개인적 범위에서 다뤄지는 비루투와 정치적 영역의 비루투를 구별하게 만들었다. 개인의 영역에서 비루투는 본질적인 문제로 기존의 논의에서 다뤄지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말해줄 수 있었다. 반면 정치적인 것은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고 이 안에서 성공하는 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과 운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탁월한 행동을 했던 과거를 찬찬히 살펴보며 성공의 길을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즉 정치적 영역의 문제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 그대로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오지 않은 이상사회에서의 모습을 찾아 거기서 살아야 할 모습대로 살아간다면 선한 사람은 결국 악한 자에게 죽는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보다 지금 존재하는 것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는 개인적인 영역의 비루투를 넘어서는 비열함까지 가능했다. 그것이 정치적 영역에서의 비루투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상당부분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특히나 실천적 지혜를 이야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상당부분 일맥상통한다. 상황에 따라서 실제로 해야 하는 행동들이 같은 문제임에도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실천적 지혜를 활용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판단된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 때 현명하게 행동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 정치영역에서 비루투 또한 이런 것이다. 경험을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How에 대한 문제를 대답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형태의 비루투가 될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개인으로는 도덕적인 사람일지 모르지만 군주가 가지고 있어야 할 비루투를 전혀 가지지 못한 것이다. 군주는 자신의 국가를 유지하는 것에 언제나 최우선의 힘을 기울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덕은 기독교가 전파되어 유럽을 장학한 시점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자선과 정직을 최우선의 가치로 하는 기독교에서 지금을 잘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 판단은 타락한 인간이 끊임없이 타락하는 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영역에서는 이것을 타락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가의 생존은 군주의 가장 중요한 책무였다. 모든 국민을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군주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악덕이었다.
결국 마키아벨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실제로 악덕이 행해지는 것은 모두 허용가능 한 것이 아니고 정치의 영역에서 모든 사람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면 군주의 악덕은 오히려 긍정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개인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윤리적 덕은 그대로 정치적 영역의 덕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정치라는 것은 매우 특수하고 제한적이어서 일반적인 적용이 불가능함을 마키아벨리는 강조한 것이다. 군주의 비루투는 일반적 시선이 아니라 특수하고 역사적 상황의 맥락 속에서 살펴볼 때 그가 모든 이들의 자유를 위해 여우의 꾀와 사자의 용기를 사용한다면 분명 유덕하게 보일 것이다. 군주의 유덕함은 거기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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