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이상국가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걸 비판하는 요인에는 몇 가지가 있다. 그가 비판을 시작하는 것은 아내공유제부터 시작하고 있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지적되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인데 하나는 그 목표를 이론적으로 설명을 못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에서 그 형태를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이고 마지막은 이 목표를 어떻게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국가 전체가 가능한 하나의 통일체가 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통일체가 되어가기만 한다면 국가는 그 스스로가 국가이길 포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을 지적한다. 국가은 본질적으로 복합체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국가가 하나의 통일체가 되어감에 따라서 국가는 가정이 되고 결국에는 개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개인이 통일체의 성격을 가장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통일성이 결국은 국가를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에 이상국가는 무의미해져 버릴 것이다.
국가는 어느정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어야 국가 내부에서 그 기능이 분화되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국가는 단순한 군사동맹이 아니고 부족도 아니다. 서로 그 종류가 달라야 한다. 동등하면서 서로 다른 이들이 있을 때 비로소 국가는 국가로서 남아 있을 수 있다. 통일성이 선이라면 국가를 국가답게 해줘야 한다. 그러나 그 선이 결국 국가를 망쳐버린다면 그것이 선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지나친 통일성은 자족성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더욱이 일단 통일성을 요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논리적으로 모두가 같은 것을 내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고 ‘다함께’라고 하면 화합을 저해한다.
또 다른 불리한 점은 많은 사람에게 속하는 것일수록 결국 보살핌을 적게 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공유재산을 보게 되면 나만의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관심을 덜 가지게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누구나 다 신경쓴다고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생각을 덜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설사 이런 일이 안 발생한다고 해도 서로가 가족임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처자 공유의 제도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데 근친의 문제가 발생한다. 근친이 가해지는 것은 서로 친척인지 모르고 있을 때 더 쉽게 발생하는데 모두가 공유되는 상황이라면 근친의 가능성이 늘어나게 된다. 근친이 신성한 계율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제한되어야 마땅하다.
더욱이 처자공유제로 인하여 우애의 힘이 약해질 것을 걱정해야 한다. 우애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분열하지 않고 서로를 지켜준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처자 공유제는 우애를 가지지 못하게 하거나 상당히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애는 통일성이 최선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원천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애는 우선적으로 소중한 것, 즉 내 것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 되는데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이런 두 개념이 존재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재산공유의 문제도 발생한다. 재산이 공유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실현가능 한 일이긴 하다. 일부 잘 정리된 나라에서는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면적인 공유제는 일정한 문제를 유발한다. 가장 큰 것은 적게 일하고 더 받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만의 원이 된다. 이 밖에도 또 다른 문제는 소유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자기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엄청난 쾌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자기의 것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베풀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미덕이라고 이야기하는 호의를 배푸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통일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런 쾌감들을 모두 가질 수 없게 된다. 재산 공유제는 얼핏 들으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상당히 좋아 보인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적인 사악함으로 비롯되는 것이지 재산 자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방식을 대체 농민에게 사용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들도 모든 것을 공유한다면 대체 수호자와 차이는 무엇인가? 대체 왜 수호자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 반대로 공유를 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전반적인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면 한 국가 안에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두 파벌은 서로를 미워하고 싸움을 지속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행복하지 않은 수호자들이 나라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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