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나라에서 임금을 많이 받는 이유는 그 나라엔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1. 자유 시장 경제학자 vs 장하준 교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같은 일을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임금 차이가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항공기 기장들이 한 파업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세계 평균 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파업을 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자유 시장 옹호자들은 임금 차이만큼의 생산성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시장 경제는 생산성이 높은 만큼 보수를 받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장하준 교수는 이것이 순전히 각 정부의 이민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나라 간의 이주가 자유롭다면 일자리 대부분은 못 사는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은 상당 부분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라고 주장을 한다. 생산성의 차이가 임금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임금이 높은 이유를 설명해준다고 장하준 교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여기에 다른 요인도 작용한다. 바로 역사적으로 축적한 다양한 제도들이 부자나라의 생산성을 보장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나라의 부유한 계층들은 이런 제도들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가난하게 만든 주역이다.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자유 시장 옹호자들은 당연히 해결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을 한다. 공평하고 효율적인 보상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저임금제와 같이 인위적인 조정을 해봐야 능력과 노력에 대해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인 보상을 하게 되는 것 말고는 다른 결과는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반면 장하준 교수는 시스템(제도, 인프라, 조직, 기술 등을 통칭해서 이르는 말)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을 했다. 사실 생산성은 제도의 문제라는 것이 바로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화, 바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개인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신화부터 깨야 한다고 주장을 강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바로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정확히 말하면 시장의 분배에 대한 신뢰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환상을 깰 것을 요청한다. 시장은 자기 스스로 정의로운 분배를 실행할 수 없다. 거기다가 시장은 각 지역의 제도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상이한 임금체계가 나라마다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임금체계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이것을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장하준 교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2. 자유시장주의자들과 장하준 모두에 대한 비판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라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이나 장하준 모두 몇 가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자유시장주의자들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시장경제에서는 “임금=생산성”이란 명제이다. 이것은 임금이 그의 노동력을 그가 생산에 기여한 바만큼 분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명제는 사실이 아니다. 이는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오류, 즉 시장을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가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은 순전히 그 직종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희소성’과 ‘대체될 수 있는 직종의 다양성’에 의해 결정된다. 자유 시장에서 임금은 가격이다. 즉, 임금은 생산량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능력만큼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등에 많은 도움을 받지만 전등 가격이 우리에게 기여해주는 만큼 가격이 책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 재화의 가격을 책정할 때는 다른 재화와 관계를 살피고 난 이후에 가격을 매긴다. 노동도 마찬가지다. 임금을 풀어서 설명하면, ‘할 수 있지만 안하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호주 통계국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자에 따르면 광부, 화학기사, 석유·가스공장 기사 등은 주당 평균 1974달러(약 145만원)를 받아 연봉 10만2648달러의 소득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의사는 주당 평균 1602달러, 치과의사는 1711달러, 변호사는 1689달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의사나 변호사보다 광부나 가스공장 기사가 생산성이 더 높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야할까? 그럴 리가 없다. 단지 힘든 육체노동직종에서 사람들에게 일을 계속 시키려면 다른 직업으로 이직하지 않을 정도의 돈으로 넉넉하게 줘서 붙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육체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똑같은 일을 하고도 스웨덴 사람이 인도 사람에 비해 50배의 임금을 더 받는다면 생산성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명제도 잘못된 명제가 된다. 이것은 생산성의 차이가 아니라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것과 그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줄 대체 직종의 수가 지나치게 적은 것과 관련이 있다.
거기다가 한 가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스웨덴과 인도인의 월급 차이를 숫자 그대로 비교했다는 점이다. 임금의 가치에 대한 차이는 단순히 숫자의 차이를 살펴서 평가할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그 임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비해서 비교를 했어야 명확히 드러낼 수 있었다. 스웨덴과 인도에 공통된 한 직종의 임금 차이가 50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해보자. 그런데 두 나라의 경제규모는 다르다. 따라서 숫자 그 자체를 단순비교를 하면 안 된다. 문제는 경제규모의 차이도 임금격차만큼의 차이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있다. 약 41배 정도 스웨덴이 인도보다 경제규모도 큰 것이다. 경제규모가 저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아마 물가도 거의 비슷하게 차이가 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가 차이랑 이것저것 비교해보면 거의 비슷한 정도 실질적인 임금을 받는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임금을 통해 생산량의 차이를 비교하고 싶다면 같은 국가 안에서 살펴야 할 일이지 다른 국가의 임금과 비교를 하는 것은, 특히나 이렇게 단순하게 금액만으로 임금 비교를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반면 장하준 교수도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인금 격차는 각 정부의 이민정책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나라 간의 이주가 자유롭다면 일자리 대부분은 못 사는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의 일자로 될 것이라는 가정이다.
분명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면 부자 나라의 많은 직종에서 임금이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만들어낼 결과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우선 저임금이 되면 부자 나라의 국민들은 그 직종의 직업을 기피할 것이다. 멀리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을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을 나온다. 대학을 4년 다니고 나면 그간 들인 돈만 3000~4000만원이 웃도는 액수가 된다. 지금까지 들인 비용이 있고 자신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임금에 의한 유인이 없다면 절대 저임금 직종으로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청년이 실업중이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3D업종과 중소기업은 외국인 노동자나 산업연수원 학생들을 쓰지 않으면 사업장을 돌리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임금이든 아니면 복지가 되었든 육체노동직종은 무엇으로든 유인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포기하면 그 직종에는 대부분 외국인들이 취직하게 될 것이다.
이민정책의 적극적 실시가 부자나라의 지나치게 많은 임금을 낮추는 것이 된 것일까? 그냥 저임금 직종을 외부에서 들어온 이들에게 떠맡겨버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어 보인다. 즉 대부분의 일자리를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 직종의 일자리 대부분을 외국인들이 차지하게 된다는 결과가 나온다.
사실상 평등해지는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는 그 직종의 생계만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이민 정책 변화를 이야기한 것은 장하준 교수의 명백한 실수였다.
와이셔츠 한 벌 땅 세탁비용(달러) | 세탁소 노동자 일인당 인구비율 | |
덴마크 | $ 5.20 | 3500 |
스웨덴 | $ 4.25 | 272 |
스페인 | $ 3.90 | 905 |
서독 | $ 3.70 | 667 |
영국 | $ 2.20 | 750 |
미국 | $ 1.50 | 391 |
표 1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이민은 정말 말 그대로 임금만 내려놓을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이 노동에 대한 합당한 가격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표가 보여주는 것이 세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만 낮아져서 더 많이 일해야 이전처럼 살게 된 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3. 임금 격차에서 바라본 경제적 문제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라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오류에 기반 한다. 일단 임금에 대해서 그가 정의하는 것 자체가 임금을 재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임금을 풀어서 설명하면, ‘할 수 있지만 안하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 자체가 ‘하는 일’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장하준 교수건 자유시장주의자건 재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가 자유시장주의자보다 탁월한 부분은 몇 가지 있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임금의 분배가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고 자유로운 노동시장에 임금 문제를 맡기자는 생각을 했다. 반면 장하준 교수는 “임금은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정책적 결정이 임금을 결정지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정책적 결정은 무엇인가? 바로 경제 성장 정책, 경기 부양 정책이다. 임금이 ‘할 수 있지만 안하는’ 노동에 대한 대가라는 사실은 가난한 나라의 대체 직종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차기 산업으로의 이행 등이 재대로 이루지 못한 바로 그 나라의 부자들과 관료들이 임금 격차의 주범이다.
실제로 진짜 임금 격차를 줄이려면 가난한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줄 수 있는 생동력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생동력 있는 환경과 산업이행의 길목을 열어 주는 것은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동북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살펴봐라. 이민 정책과 상관없이 임금격차를 꾸준히 줄여왔다.
세계적인 임금격차는 정책적 결정에 의해서 발생된 사회발전의 둔화 때문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오래된 일자리의 가격은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금은, 단지 시장에서 결정되기만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과 연계되는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도 부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재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 나라의 부자들이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그 부자들과 관료들이 최소한 경제 전반의 발전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게 부자 나라에는 다양한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가난한 나라에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했다. 따라서 임금격차를 해결하고 싶다면 새로운 시스템을 짜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론은 이거다. ‘잘 사는 나라에서 임금을 많이 받는 이유는 그 나라엔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라는 평범한 진리로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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