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eralism and end of Cold War』
문제 의식 : 어떻게 자유주의가 냉전을 종결되고 새로운 평화시대를 국제체제에서 시작되게 하는데 노력했는가?
이런 문제의식은 두 가지 논의를 수반함
① 어떻게 그리고 왜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개혁이 이런 상황을 오게 만들었는가.
② 자유주의적 개혁의 결과가 평화와 연관성을 가질 것이란 광범위한 예상을 평가 할 것.
①은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다루고 ②를 이야기 하자면 이런 연관성은 국내의 시민 권리와 대중의 자기 지배가 성장하면 단계적으로 국제평화의 가망성도 증가한다는 것에 기초한다. 레이건이나 부시(아버지 부시)와 같은 중요한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통찰에 기여했다. 이런 통찰의 뿌리는 고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토머스 페인이다.
“인류의 적이고 고통의 원천인 군주제 통치는 끝났다. (중략)...유럽 전역에서 이런 사건들이 전쟁의 원인을 제거했다.”
이런 입장의 사람들에 따르면 민주평화주의자들은 권위주의적 지도자와 전체주의적 정당 독재의 공격적 본성이 전쟁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법 앞에서의 평등,, 언론의 자유, 사적소유와 선출된 대표자 같은 개인의 권리에 기초한 민주국가는 전쟁에 대항한다. 시민은 교역의 이익이 평화의 상태에 있게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자유 시장 중심 민주국가의 존재는 평화를 만들어 낸다.
1) 민주적 자유화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중요성이란 기본적 원리에 공감한다. 특히 이것은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도덕적 주체로 대할 의무와 권리란 도덕적 자유의 중요성에 기초한 신념이다. 이런 자유주의는 권리를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① 소극적 자유
② 적극적 자유
③ 민주적 참여 또는 대의권 – 다른 권리를 보호하는 권리
자유주의는 또 4가지 기초제도에 대한 공유된 약속들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① 시민은 법률적 평등과 종교, 언론의 자유와 같은 시민적 권리를 소유한다.
② 국가의 효율적 주권은 대표 입법부에 있다.
③ 생산수단을 포함한 사적 소유권에 대한 인식에 경제가 기초한다.
④ 경제적 결정은 국내외적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대게 형성되며 관료로부터 자유롭다.
이 세 원리와 네 가지 제도는 자유주의 국가의 두 길을 형성한다,
① 자유방임주의 자유주의
- 자유를 행사하기 위한 기회의 평등을 보호하기 위해서 추진된다. 여기서 국가는 최소 한의 역할을 사적 소유와 시장은 최대의 역할을 해야 한다.
② 복지 자유주의
- 자유를 행사하기 위한 기회의 평등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추진된다. 구가의 역할을 크 게 하고 시장을 규제한다.
일정한 차이는 있지만 네 가지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고 군제제와 일당독제 공산주의와 같은 타 제도들과 대비된다. 이제 앞으로 다룰 자유주의의 세 가닥들은 대중 정부, 시민의 자유, 사적 소유, 시장으로 대표되는 현대 자유주의 레짐을 성립하게 하는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이다.
2) 자유주의적 저항
로크에 따르면 저항에 대한 설명은 폭압에 의해 정의 되고 설명된다. 우리가 시민사회라고 부르는 ‘정치적 사회’는 국가의 존재에 선행하고 외현적이거나 내포된 사람간의 계약에 의해서 구성된다. 여기서 사람은 이성과 감성의 자연적 평등 상태에 있어서 자신의 선택을 통해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구성된 사회에서 입법부와 행정부는 삶, 자유, 소유의 보호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 시민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의 삶을 규제할 수 있다. 시민들의 계약으로 만들어진 시민 사회는 외국의 정복을 통해서만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폭압적인 행위에 의해서 해산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언제나 통치자는 사람의 재산을 제거하고 파괴하려는 노력을 하고 사람들을 제멋대로인 폭력 아래 노예상태로 낮춰 놓으려 하며 그들 스스로 전쟁의 상태에 놓이게 한다. 그러나 곧 사람들은 복종으로부터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하고 모든 사람에게 신이 제공한 피난처로 가 폭력과 강제에 대항한다.”
위의 설명은 저항에 대한 비유이다. 이 비유에서 드러난 주장은 결함이 명백하다. 정의를 정의하고 있지만 폭압적 제도가 장수하고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저항을 설명하지 못한다. Vaclav Havel은 일상의 억압적 특성 안에서 동부 해방의 기원을 서부에 설명하려고 시도 했을 때 전체주의 체제의 특수한 성향과 이 힘의 독단을 강조한다.
“...(중략) 인가니 정신과 인간의 존엄성의 점진적 파괴, 영구적 굴욕의 상태에 살고 있다.”
로크의 믿음과 그 믿음으로 구성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저항자의 정신은 최소한의 환경에서 조차, 시공간을 뛰어 넘어서 자유를 향한 욕구에 대한 기이한 도달을 설명한다.
3) 자유주의적 근대화
열망은 시민들의 왜 자유를 추구하는지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디에 , 언제 그들이 자유를 실현하는지에 대한 해석이 부족하다. 자유주의 두 번째 가닥은 경제적인 가닥으로 삶, 자유, 그리고 소유에 대한 열망만 설명을 시도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 자유에 대한 추구가 성공하고 실패하는지 설명하려 한다. 헤겔의 역사철학이 이런 자유주의적 근대화에 대한 이상주의자의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그러나 Joseph Schumpeter는 이 해석보다 유물론적 해석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도전적이지 않은 기질을 생성시킨다. 여기서 대중들은 ‘민주적이고 개인적이며 합리적’이다. 그들의 에너지는 시장의 생산물로 흡수되어 버린다. 산업과 시장에 대한 훈련은 사람들을 “경제적 합리주의”로 이끌고 간다. 불안정한 산업사회에서의 삶이 사람을 계산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기존 사회의 “불멸하는 요인”들을 개별화시키고 주관적 기회들로 대체한다.
Francis Fukuyama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을 통해 유물론자와 이상론자 모두에게 자유주의적 근대화의 급진적인 수정을 제시한다. 동유럽 어디에서든 독재국가가 실패했다는 것과 근대화의 강렬한 공격성 아래에서 소비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이룬 업적을 연구해서 보여주는데 역사의 종말이란 삶과 사건이 중단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 정체성, 의미, 목적의 대안 방안들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좋은 삶을 보여주는 서구 자유주의에 대한 실행가능하거나 믿을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이한 종결의 이유는 두 가지다.
① 정치적 민주주의와 소비자본주의에 의한 자유주의는 역사 과정 도처에 있는 삶의 모 순을 해결했다.
② 공산주의를 포함한 자유주의에 라이벌인 정치적 정체성이 구성한 체제가 복지와 자유 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끝나버렸다.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주장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후쿠야마는 대중과 엘리트들 모두에게 공산주의는 거부당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동유럽 혁명과 자본주의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존재하거나 존재 했던 공산주의와 모든 사회주의가 위기인가?”란 중요한 질문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이는 “스탈린주의나 마오이즘과 같은 사회주의가 위기인가 혹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취한 제 3의 길이 가지는 잠재적 위기인가”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Ellen Comisso가 했다. 그녀는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는 자유적 근대화를 향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자유주의와 침체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대안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녀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회주의자는 경제적 평등을 원한다. 그러나 지금은 생산수단의 공공 소유는 사라졌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서 사회주의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상품 시장만으로는 생산성을 충분히 증가시킬 수 없다. 경제 시스템은 진짜 자본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효과적인 경제는 수입성이 없는 회사에게 자원을 주지 않고 수익성이 좋은 회사에 자원을 주는 것을 보장할 필요가 있지만 사회주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녀의 주장을 거부할만한 충분한 논거들이 있기는 하다. 하나는 사회적 효과를 위해 자본주의에 의존하면서 생산수단의 평등한 소유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금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하나는 1980년까지 공산주의적 생산이 비효율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후발 자본주의 상태에서의 성장에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대답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의 다양성 모두의 자유적 발전이 역사적 차원에서 민주적 자유화를 포함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형성한 체제를 넘어서서 자유적 진전의 방향이 장기적으로 자유주의의 경제적 우월성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설명이 부족해 보이긴 한다. 소비지상주의자의 근대주의는 70년대까지 우월성을 입증하지 못했고 90년대까지 동아시아의 신디컬리즘 승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경제위기로 특징지어지는 80년대로 인해서 그 이전의 공산주의 발전이 가져온 업적을 잊게 만들었다. 53년 독일에서 시작되어 91년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일련의 반란에서 공산주의는 이미 생존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91년의 혁명을 별로 혁명적이지 않다,
4)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냉전종식의 세 번째 자유주의적 시각이다. 국제주의의 기원은 18세기에 시작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칸트가 주장한 독특한 형태의 평화에서 시작한다. 칸트가 말한 전쟁 없는 상태는 다음과 같은 것에 기초한다.
① 정부에서 시행하는 규제
② 각각이 구현한 자유에 대한 자유 사회의 존경
③ 무역투자에 대한 다국가적 노력
④ 상호 이해를 만들어낸 관광업
⑤ 지속된 교역으로 얻게 되는 상호간의 세속적 이익
그러나 이 현실의 노력들은 불신, 대외정책의 혼란, 교역시 발생하는 비자유국가를 향한 적대감에 의해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비자유국가와의 대외 관계에서, 자유국가는 때때로 공격성과 공포를 드러낸다. 공포는 특히 비자유국가가 자신의 시민들을 탄압한다는 의식에 의해서 악화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긴장 상태가 전체 관계로 퍼져간다.
자유주의적 평화는 자유주의 레짐의 상승과 하강에 따라 확대되고 수축되는 성향을 보인다. 결론적으로 칸트의 이론은 만약 모든 정부가 민주적이고 평등한 상태가 되면 평화는 세계화되고 따라서 아마도 힘의 정치가 정치의 힘에 의해서 대체되어 영구적인 상태가 될 것이다.
칸트는 많은 방해 속에서 변덕스럽게 확대된 평화적 연합을 예상한다. 그의 평화는 두 궤도를 따라 간다.
① 다국가적(혹은 초국가적) 궤도
무역과 다국가적 노력, 그리고 경제발전은 밑에서부터 사회에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들은 개인적 동원을 강제하고 사회 안에서 힘의 자원들을 다수로 만들어 내어 그로 인해 자유주의적인 정치기관에 정치적 참여를 하는 사람들이 권위적인 기관을 압박 상태에 놓이게 만든다.
여기서 국제 시민사회와 국제 시민정치가 중요하다. 실제로 소비에트와 동유럽의 냉전기 서구를 방문한 엘리트들이 서구의 물질적 성공과 반대와 국민참여가 권장되고 용인되는 것을 보고 자유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교역은 더 강한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현대 경제에서는 성장을 촉진 시키는 것이 세계 경제 안에서 모두가 동의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리고 이 성장은 국내 생산을 위한 기회가 퍼져나가게 되면서 민주적 정부가 등장하게 되는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② 전쟁에 대한 국제적인 궤도
전쟁과 군사 동원의 압력은 권위를 가지는 규칙에 의해 동인을 얻게 된다. 증가한 대의권은 위로부터 공화주의적 기관을 만들라는 압력을 행사한다.
아마 평화로운 연합의 확대에 대한 전지구적 진전의 속도는 두 궤도의 효과가 복합적이고 불가분적으로 결합되면서 나타난다. 만약 다국가적 궤도가 평화적 연합의 확대를 혼자서 이끌어 간다면 그리고 전년도 증가 수치가 지속적으로 반복 된다면 세계공화주의가 이루어 질 것이다. 다른 한편 큰 전쟁 없이 자잘한 전쟁만 할 때 이미 민주화된 국가들을 닮아 간다고 주장한다면, 그리고 오십년에 두 배씩 기하학적 수치로 팽창한다면 이것 역시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두 궤도 모두 자유주의 레짐을 낳을 수 있고 결국 평화를 확대해 나간다. 그러나 이 궤도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다국가적인 노력은 갈등과 협력에 대한 동인들을 만들어 내고 국제적 궤도는 첫 환경에서 확실하게 전쟁을 예상할 것이다. 거기다 묘사된 미래는 단지 핵전쟁의 가능성과 교역, 성장 향상, 국가에 대한 감시능력의 한계, 그리고 대중 봉기의 현실성과 위기에 취약해질 구조가 없는 과거의 예상이다. 이런 변화들이 칸트의 예상을 전복시킨다. 거기다가 칸트는 인간의 선택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불확실한 가이드처럼 역사를 바라봤다. 이런 식이면 1989년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적은 도움밖에 주지 않는다.
Two-track 국제주의는 국제적인 변화의 과정을 알 수 있는데 도움을 주지만 완벽한 민주화 모델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다국적이고 국제적인 힘은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개혁에 대한 중요한 동인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힘들은 권위주의 레짐의 존재를 변화하거나 대체하거나 혹은 변형시키는 결정에 대한 대중적, 정부적 선택의 전략적 요소를 확연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권위주의 엘리트들에게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
여기서 집단 동인과 “imsincentive”라고 부르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설마 고르바초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개혁을 진행했을까? 쿠테다 이후에 옐친이 이끈 자본주의로의 길은 완전히 그의 손을 떠나버렸다. 도미노 현상에도 집중해야 한다. 89년 동유럽의 실패는 소련에도 영향을 미쳐 쿠테타를 자극했다. 마지막으로 정보 부족과 정보 부족과 불확실성이 민주적 변화에 도움이 되었다. 공산주의에 구속된 기간이 지나가면서 근원적인 사회적 지형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고 선택의 결과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동유럽과 러시아가 경쟁으로 기꺼이 뛰어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의 관점은 국제체제의 변동에 대한 이해를 더하는데 도움이 된다. 변화를 위해 가능한 국제적 자원을 강조하고 전쟁과 교역이 활발한 곳을 민주적 자유화가 특히 좋아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변화에서 두 가지 기여를 해다.
① 밑으로부터의 압력과 위로부터의 압력 모두를 강조했다.
② 평화적 연합의 확산이 평화의 약속 이후에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 개혁의 위험한 과정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을 뒷받침한다
5) 민주적 평화?
이제 이슈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산의 결과가 평화의 확실한 설명이 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칸트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평화에게 변화의 이익을 준다는 좋은 논거를 제공했다. 여기서는 필요와 보증이 아닌 것으로써 평화와 민주주의가 관련되는 세 가지 이유를 제기 하겠다.
첫 번째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우리에게 헤게모니의 다음 도전자가 자유주의라면 헤게모니 변화가 평화적일 것이란 점과 냉전시기 같은 자원낭비나 전쟁이 없을 것이란 희망을 준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발전했지만 문화가 그에 못 따라가면 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우리는 민주주의적 규제가 평화의 정신을 보증하는 것이란 주장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칸트 자신도 자유국가가 제국주의와 연결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John Mudler는 전쟁은 쇠퇴한다고 주장한다. 산업적 힘의 발전 중 긴 평화는 국제관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전쟁의 쇠퇴는 두 발전의 기능이다.
① 전쟁의 물리적 비용을 찾을 수 없다. - 전쟁은 비합리적.
② 전쟁의 정신적 비용이 증가 - 전쟁은 우스꽝스러운 것
셋째, 모든 민주국가가 같을 필요는 없다.
이론적 우월성을 동시대 민주국가들의 발전에서 다양성의 실제 진행에 이용한 결과, 그것은 우리에게 민주화를 향한 최근의 경향의 국제적 영향에 대한 일부 유용한 주의를 제공한다. 창조적인 리더십은 민주적 평화를 서서히 쇠락시킬 수 있는 자급자족국가나 내셔널리즘을 완화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 스스로 평화를 세우기 위해, 민주국가들은 각각의 길 안에 있는 개별적인 권리와 민주시민 권리의 도덕적 기초 안에 수반 된 모든 인간의 국제적인 권리를 경계 지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 중에서 번창하는 다국가적 사회의 정신적 노력을 허용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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